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지혜는 받는 게 아니다.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고, 아무도 거들어 줄 수 없는 광야를 지나는 여정을 끝낸 뒤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우리는 삶에 찾아오는 시련이나 고통을 광야로 비유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땅으로 들여보내시기 전에 이스라엘 민족을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허락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40일간 광야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어렵고 힘든 시간이지만 아무도 대신해줄 수 없는 광야의 시간을 통해서 더 지혜로운 자로 거듭납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고난의 유익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요즘 시대를 공감의 시대라고 하여 누군가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에는 민감하지만 그 고통과 환란이 유익한 것이라 말을 하려면 용기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러나 최소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고난은 유익을 넘어 영광의 시작점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사시는 기간에도 여러 가지 고통을 경험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장 빛나게 드러난 시점은 바로 예수님의 고통이 가장 극심했던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입니다.(요 12:23) 사도 바울도 자신이 옥에 갇히고 여러 어려움을 겪는 것이 편지를 받는 성도들의 영광을 위함이라고 말했습니다.(엡 3:13)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에게 고난과 영광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나에게 찾아온 고난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이 땅의 몸 된 교회를 영화롭게 합니다. 고린도후서 4:17에서 사도 바울도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고난도 선하게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그리고 그분이 변화시켜 주실 것을 기대하십시오. 우리의 현실 가운데 존재하는 여러 고난과 어려움을 주님께서는 우리의 영광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