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더욱 아름답고 건강하게 보존되고 부흥하기를 바라며
“목사님 한우리 교회 성도인 것이 너무 자랑스러워요”“한우리교회 다닌다고 하면 너무 좋은 교회 다닌다며 사람들이 다 부러워해요”“한우리교회 와서 제 신앙의 눈이 열렸어요”“주일날이 기다려지고 자꾸 교회 가고 싶어져요”“한우리교회 와서 우울증이 사라졌어요”“한우리교회에 와서 부부관계가 좋아졌어요”“한우리교회에는 제가 본받고 싶은 분들이 너무 많아요.”“교인들이 총회에서 오손도손 교회 일과 재정을 논의하는 모습에 은혜 받았어요”
제가 성도님들로부터 들었던 수많은 말들 중의 일부입니다. 우리 한우리교회가 이렇게 건강하고 좋은 교회가 된 것은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요, 둘째는 교회를 너무 사랑하여 희생하고 헌신적인 성도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성도님의 한 가정을 소개하는 것으로 마지막 목회자 칼럼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2011년도 9월 23일 아침이었습니다. 새벽 기도를 마치고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어느 집사님께서 밝은 표정으로 찾아와 인사를 하셨습니다. 교회 패티오 지붕을 고칠 것이 있다고 해서 오셨다고 했습니다. 5분이나 지났을까요? “목사님 나와 보세요!” 부목사님의 다급한 외마디 소리를 듣고 뛰어 나가보니 집사님께서 지붕에서 내려오시다가 떨어져 머리에 피를 흘리고 계셨습니다. 몇 분후에 구급차가 와서 병원으로 급히 이송되었지만 집사님께서는 다시 돌아오지 못하셨습니다. 뇌사 판정이 나서 모든 장기를 기증하고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고 백재호 집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유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교회 성도들의 충격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달라스 교민들 사이에서는 “이제 한우리교회는 큰일 났다.” “한우리 교회는 끝났다.” 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오기도 했습니다. 뼈를 깎는 아픈 심정으로 교회장으로 천국환송예배를 드리며 집사님을 보내 드렸습니다. 유가족들께서는 병원에 오가고 장례를 모시는 과정에서도 단 한 번도 교회를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으셨습니다. 끓어오르는 슬픔과 애절한 마음을 눈물로 삼키면서도 오히려 “주님의 일을 하다가 간 것이 감사하다” 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해 11월 첫 주, 1년 동안의 재정을 결산하는 전교인 총회가 있던 주일 날 밤이었습니다. 고 백재호 집사님의 부모 되시는 백낙훈 장로님과 백옥성 권사님께서 저의 집을 찾아오셔서 적지 않은 돈을 내 놓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우리 아들 장례식을 교회장으로 하느라고 교회 재정이 마이너스로 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이오니 금년도 재정이 마이너스가 되지 않도록 해 주세요.” 그리고 장로님과 권사님은 말없이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3년 전, 집사님이 천국에 가신 9월이 다가오자 교회가 유가족들에게 너무 무심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 장로님을 찾아가 교회에서 고 백재호 집사님 추모예배를 드리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장로님과 권사님께서는 “다 지나간 일인데 뭘 그러세요?” 하시면서 극구 사양하셨습니다. 지금도 고 백재호 집사님의 부인되시는 백용춘 자매님과 동생 되시는 백남수 집사님은 부모님과 함께 말없이 그리고 충성스럽게 주님의 몸 된 한우리교회를 섬기시며 사랑하고 계십니다. 너무 가슴이 아파 다시는 꺼내고 싶지 않은 이야기지만 하나님과 교회를 사랑하는 장로님의 가정을 통해서 교회의 위기를 부흥으로 바꿔 주신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어서 이렇게 적어 보았습니다.
오늘날의 한우리교회가 우연히 된 것이 아니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는 많은 분들의 헌신과 희생과 땀, 그리고 눈물어린 기도로 된 것임을 우리 모두 다시 한 번 기억해야 합니다. 자녀를 잉태하고 낳아주고 키우며 품어주는 어머니와 같은 교회!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에서 갈한 목을 축이듯이 이민생활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생명수를 제공하는 한우리교회가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더욱 건강하고 아름다움 모습으로 보존되고 부흥하기를 다시 한 번 소원하면서 마지막 칼럼의 펜을 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