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김호제 전도사(유치부 교역자)
김호제 전도사(유치부 교역자) 658
얼마 전 저는 제 안에 무언가 상한 마음과 불편한 감정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동안 곰곰이 지난 저의 삶을 돌아보고 저의 내면을 들여다본 결과 그것이 학교에서 파트타임으로 근무하던 중에 발생했던 사소한 일들, 나보다 한참 어린 친구들로부터 존중받지 못했다고 느꼈던 사소한 사건에 기인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침례요한의 생애와 주님에 대한 그의 고백을 흠모하여 나 역시 그렇게 살고자 하는 마음에 영어이름도 John이라고 스스로에게 지어주었지만, 여전히 내 안에 있는 자아는 남에게 더욱 존중받기를 원하고 더 나아가 때로는 그것을 마땅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침례요한이 회개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그에게 나아오는 사람들에게 침례를 베풀 당시 침례요한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그리스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로 커다란 영향력을 끼쳤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등장과 함께 그의 입지는 점차 흔들리게 되고 그와 동일하게 침례를 베풀어 주시는 예수님에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하소연 하듯 그의 스승에게 보고하는 제자들에게 침례요한이 한 위대한 고백이 바로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한 노래의 제목인 “I Want What I Want When I Want It”으로 대변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의 의견, 나의 욕구, 나에 대한 존중을 추구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해 보이는 시대 속에서도 성경은 우리가 침례 요한의 이 고백대로 살고 있는지 묻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약 이천년 전 침례 요한의 고백과 같이 나는 쇠하고 주님께서 흥할 때 예수님을 통해 그리고 침례 요한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삶 가운데에서도 이 고백과 같이 나는 쇠하고 주님은 흥하게 되어 주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풍성한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