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의 길
지금부터 110여 년 전 미국 선교부에서 한국으로 파송받은 젊은 선교사 부부이야기입니다. 그들이 바로 바로 윌리엄 선교사와 그의 부인 샤프입니다. 선교사 부부는 충남 공주를 기반으로 하여 선교를 시작했습니다. 공주에서 첫 아들을 낳았는데 한국의 광복을 기원하면서 이름을 우광복이라고 지어주었습니다. 이어서 올리브와 로저라는 두 딸을 낳게 됩니다. 1906년 2월 논산지방 부흥회를 인도하고 돌아오다가 비를 피해 상여간에서 잠시 쉬었는데 바로 전날 장티푸스로 죽은 사람을 장례하고 그 장례용품을 보관해 두었기 때문에 선교사님이 장티푸스에 감염되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졸지에 샤프 사모님은 과부가 되어 미국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선교사님의 부인은 한국을 잊지 못하고 2년 후 자녀를 데리고 다시 한국 공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47년간 선교사역을 하면서 공주 지역에 교회들을 세우고 영명중고등학교를 세워 수많은 인재들을 길러냅니다. 3.1운동의 상징인 유관순은 아예 양녀로 데려다 키웠고, 중앙대학교 설립자 임영신, 한국인 최초 여자목사 전밀라, 여성교육의 박화숙, 한국인 최초 여자 경찰서장 노마리아 등을 키워내는데 많은 기여를 합니다.
사역하는 동안에 두 딸 중에 하나인 올리브는 풍토병에 걸려 11살에 죽어서 영명중고등학교 동산에 묻힙니다. 그러나 아들 우광복은 공주에서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나오고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를 하다가 해방되어 다시 한국으로 나와 신탁통치를 맡고 있던 군정관인 하지 장군의 통역을 맡게 됩니다. 하지 장군은 우광복에게 “자네가 한국 실정을 잘 아니 앞으로 한국을 이끌어 갈 인재 50명을 추천해 달라” 고 부탁 합니다. 우광복은 어머니와 상의한 후 어머니가 추천해 주는 50명을 하지 장군에게 소개했습니다. 그 중에 48명이 기독교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국정부 수립될 때 요소요소에 기독교인들이 들어가서 나라를 세우는데 큰 역할을 감당합니다. 문교부 장관에 기독교인이 임명되어 미신 타파를 시작하고 국방부장관에 기독교인이 되어 군대 안에 군목제도의 토대를 마련하여 한국군을 하나님의 군대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제헌 국회 국회의원 거의 모두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지금도 우리나라 제헌국회 속기록 첫 장을 열면 기도로 국회를 개원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48년 5월 30일 제헌국회 첫 회의에서 이승만은 이윤영 의원에게 기도로 국회의 첫 회의를 시작할 것을 요청하여 기도로 시작하게 됩니다.
이때 기독교인이 5%도 안 될 때입니다. 그런데 샤프 사모님이 추천해준 50명의 기독교인들이 각 분야에 들어가서 영향을 미친 결과 10년 만에 500만이 되고, 20년 만에 1000만성도가 되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우광복은 1994년 87세 일기로 소천했는데 "11살에 죽은 내 동생 올리브가 묻혀있는 공주 영명중고등학교 내 동생 곁에 나를 묻어 달라"고 유언하여 지금은 우광복의 묘가 동생 옆에 나란히 있다고 합니다.
세상에는 참 많은 길이 있습니다.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서 자기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반드시 어떤 길을 선택하여 가게 되어 있습니다. 영광의 길도 있고 고난의 길도 있고 또 승리의 길도 있고 멸망의 길도 있고 생명의 길도 있습니다. 샤프 사모님은 젊은 나이에 사랑하는 남편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을 잃은 땅에 무슨 미련이 있어서 그 땅을 위하여 평생 헌신하셨을까요? 그 길이 그 분이 가야만 했던 고난의 길 그러나 영광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나의 길을 가겠다며 십자가의 길에 홀로 걸어가신 예수님이 계시기에 우리가 빛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감사하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