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여성들은 아름답고 싶어합니다. 자신을 단정하게 꾸미고 예쁘게 만드는 것은 권장할 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베드로 전서 3:3-4). 베드로 사도는 자신을 아름답게 하여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꾸미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속사람을 꾸미는 것에 더 많은 점수를 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 온유하고 안정된 심령을 지닌 아내로, 또 어머니로 생활한다면 함께 살아가는 가족들이 얼마나 마음이 안정되고 또 평안하겠습니까? 그러나 어머니의 마음이, 또 아내의 마음이 예민하고 화를 잘 내는 상태에 있다면 함께 사는 가족들의 마음도 불안하고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온유함(gentle)과 안정됨(quiet)이란 보화로 우리 속사람을 꾸미는 데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면 좋겠습니다. 온유와 안정으로 자신을 꾸미는 것을 베드로사도는 3장 5절에서는 이렇게 달리 표현합니다.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온유와 안정된 심령으로 자신의 속사람을 꾸미는 것을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는 것으로 바꿔 표현하고 있습니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은 온유와 안정된 심령을 소유한 아내들만이 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온유하고 안정된 심령을 소유할 수 있을까요? 베드로 전서 3장 5절에 보니 하나님께 소망을 둘 때 가능합니다.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순종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사라를 두 번이나 위험에 빠트린 남편이었습니다. 그런 아브라함을 사라는 주라 표현하며 순종하였습니다. 우리가 믿음직스럽지 못한 남편임에도 불구하고 순종해야 됨은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믿는 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고난 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을 생각함으로 고난을 참으라고 표현합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함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하면 좋습니다. 여기서 집고 넘어갈 것은 아내가 남편보다 열등하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앞에서 남편과 아내는 동등합니다. 그렇지만 주님이 가정을 세우실 때 기능면에서 남편에게 영적 리더십을 주었답니다. 그래서 아내는 그 리더십을 존중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한다면 주어지는 특별한 선물이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남편이 아내의 온유하고 안정된 아름다운 모습으로 인해 예수님을 믿게 될 기회를 얻게 된다는 말입니다. 비록 남편이 아내가 볼 때, 부족하고 믿음으로 안 사는 것 같아 보여도 아내가 안정되고 온유한 아름다운 속사람으로 남편에게 순종하고 남편의 필요를 채워 준다면 남편이 변화된다는 것이죠. 남편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연스레 세워져 나가고 싶으십니까? 아무리 겉사람을 아름답게 치장해도 남편을 바꿀 수 없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온유함과 안정됨이라는 두 무기를 가지고 남편에게 순종이라는 하나님의 방법을 사용해 보시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