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운 은혜


이필우 목사 (충성초원) 72

   가장 큰 슬픔 중 하나는 가까운 가족이나 사랑하는 이를 먼저 떠나보내는 일입니다. 18년 전, 제 가장 친한 친구가 혈액암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병이 발병한 지 불과 6개월 만이었고, 결혼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저에게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장례식에서 친구의 어머니는 저를 붙잡고 왜 자주 찾아와 주지 않았냐며 하소연 하셨습니다. 저는 죄책감에 사로잡혔습니다. 친구가 3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여러 급한 일들로 미루다 결국 영원한 이별을 맞이한 것입니다.

   그 후 한동안 저는 너무나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갑작스러운 친구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장례식장에서 친구의 아버님이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내 아들은 천국에서 하나님 품 안에 안식하고 있다. 그러니 오히려 기뻐해야 한다”며 저를 위로해 주셨지만, 아버님의 얼굴에는 깊은 슬픔이 가득했고, 그 믿음의 고백이 얼마나 힘겹게 나온 것인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친구가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의 어머니도 하나님 품에 안겼다는 것입니다. 친구의 아버지는 아내가 이제 천국에서 아들과 다시 만났을 것이라며 슬픔을 억누르려 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과 아내를 차례로 떠나보냈기에 인간적으로 신앙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버님은 어떻게든 하나님을 붙잡고자 했습니다. 저 역시 그 모습을 기억하며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습니다.

   얼마 전 한 집사님께서 자신의 삶의 고난을 나누시며 “하나님은 기쁜 은혜뿐만 아니라 괴로운 은혜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괴로운 은혜’라는 말이 깊이 와 닿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떠올릴 때 평온하고 따뜻한 이미지를 많이 생각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우리를 몰아넣으시고, 깊은 아픔 속에 우리를 두실 때도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이런 고통을 허락하시는지 쉽게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헨리 나우웬은 “진정한 친구는 내가 문제가 생길 때 그 문제를 해결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내 곁에 함께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고통 가운데 있을 때 떠나지 않으시고, 오히려 괴로운 은혜를 통해 더욱 깊이 의지하게 하십니다. 친구의 아버지는 그 깊은 슬픔 속에서도 신앙을 잃지 않으려 애썼고, 결국 그분의 고백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증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는 단순히 이 땅에서의 위로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 안에서 다시 만날 소망을 품고 살아갑니다. 친구의 아버지가 끝까지 신앙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사랑하는 가족과 다시 만날 것을 믿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 또한 친구와 다시 만나게 될 날을 기대합니다. 요한복음 11장 25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우리의 삶이 아무리 괴로운 순간을 지나더라도, 영원한 생명과 다시 만날 소망이 있기에 우리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괴로운 은혜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리고 그 은혜는, 비록 지금은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결국 우리를 더 단단한 믿음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서 사랑하는 이들과 다시 만나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