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에서 유명으로

이현태 목사 (초등부)
이현태 목사 (초등부) 69

      제가 다니고 있는 싸우스웨스턴 신학교 교정에는 오랜 세월 동안 같은 자리를 지켜온 아름드리나무들이 많이 있습니다. 미국은 토양이 좋아 나무들이 금세 높이 자란다고 합니다. 수백 년은 되어 보이는 나무들도 꽤 많이 있습니다. 학교가 설립된 지 100년이 넘었기에 교정의 나무들도 최소한 백년이 넘었을 것입니다. 이 나무들이 학교의 건물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그중 한 그루가 뿌리채 뽑히는 일이 있었습니다. 여름마다 행인들에게 잠깐의 시원함을 주었던 그 큰 나무가 지난겨울 병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흉물이 되어 버린 이 나무를 뿌리까지 빼내어 흔적조차 남지 않게 뽑아 버렸습니다. 나무가 컸던 만큼 제거하는 데에만 이틀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긴 시간을 들여 뽑아냈지만, 그 자리에 머물고 있던 시간에 비하면 말 그대로 한순간에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저는 이 과정을 지켜보며, 한 가지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과연 이 길을 지나가던 행인들은 큰 나무가 없어진 것을 알까?” 스스로에게 답을 해보았습니다. “아니”라고 말입니다.

   수많은 학생이 그 나무 그늘에 앉아서 책을 읽었을 것입니다. 혹여 그 나무를 남몰래 가꾸던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나무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눈에 띄는 환경의 변화에도 그 일에 관여된 사람이 아니라면, 그 변화를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아무리 큰 나무였을지라도 존재여부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 수많은 나무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음을 반증합니다.

   아무리 대단하고 멋진 삶을 살더라도, 그 삶은 한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 스스로 믿지만, 실제 그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스스로는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군중 속에 있는 사람들 중 무명의 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군중 속에서 “나”라는 존재를 특별하게 하는 것은 바로 “관계”입니다. 내가 가꾸던 나무, 나에게 그늘을 주었던 나무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기억되길 원합니다. 그래서, 남들이 기억해 줄 만큼 대단하고 유명해지고자 합니다. 그런데, 불행한 것은, 아무리 대단하고 유명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한 사람에게조차 제대로 기억되지 못하는 무명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달리, 누군가와 관계하고 있는 평범한 한 사람은, 큰 것 주지 않았지만, 대단하지도 않지만, 최소한 그 누군가의 마음속에서는 유명한 사람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지금 나와 관계하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요? 그리고, 그 사람들은 모두 안녕한가요? 만약, 그렇지 못한 한 사람이 있다면, 지금이 바로 나의 존재가 무명에서 유명으로 옮겨지는 순간이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