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다니고 있는 싸우스웨스턴 신학교 교정에는 오랜 세월 동안 같은 자리를 지켜온 아름드리나무들이 많이 있습니다. 미국은 토양이 좋아 나무들이 금세 높이 자란다고 합니다. 수백 년은 되어 보이는 나무들도 꽤 많이 있습니다. 학교가 설립된 지 100년이 넘었기에 교정의 나무들도 최소한 백년이 넘었을 것입니다. 이 나무들이 학교의 건물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그중 한 그루가 뿌리채 뽑히는 일이 있었습니다. 여름마다 행인들에게 잠깐의 시원함을 주었던 그 큰 나무가 지난겨울 병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흉물이 되어 버린 이 나무를 뿌리까지 빼내어 흔적조차 남지 않게 뽑아 버렸습니다. 나무가 컸던 만큼 제거하는 데에만 이틀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긴 시간을 들여 뽑아냈지만, 그 자리에 머물고 있던 시간에 비하면 말 그대로 한순간에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저는 이 과정을 지켜보며, 한 가지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과연 이 길을 지나가던 행인들은 큰 나무가 없어진 것을 알까?” 스스로에게 답을 해보았습니다. “아니”라고 말입니다.
수많은 학생이 그 나무 그늘에 앉아서 책을 읽었을 것입니다. 혹여 그 나무를 남몰래 가꾸던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나무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눈에 띄는 환경의 변화에도 그 일에 관여된 사람이 아니라면, 그 변화를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아무리 큰 나무였을지라도 존재여부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 수많은 나무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음을 반증합니다.
아무리 대단하고 멋진 삶을 살더라도, 그 삶은 한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 스스로 믿지만, 실제 그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스스로는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군중 속에 있는 사람들 중 무명의 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군중 속에서 “나”라는 존재를 특별하게 하는 것은 바로 “관계”입니다. 내가 가꾸던 나무, 나에게 그늘을 주었던 나무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기억되길 원합니다. 그래서, 남들이 기억해 줄 만큼 대단하고 유명해지고자 합니다. 그런데, 불행한 것은, 아무리 대단하고 유명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한 사람에게조차 제대로 기억되지 못하는 무명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달리, 누군가와 관계하고 있는 평범한 한 사람은, 큰 것 주지 않았지만, 대단하지도 않지만, 최소한 그 누군가의 마음속에서는 유명한 사람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지금 나와 관계하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요? 그리고, 그 사람들은 모두 안녕한가요? 만약, 그렇지 못한 한 사람이 있다면, 지금이 바로 나의 존재가 무명에서 유명으로 옮겨지는 순간이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