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나이의 하나님

김호제 (지역사회섬김부/유치부/중보기도부)
김호제 (지역사회섬김부/유치부/중보기도부) 77

   주일에 교회에 나와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은 한 가지 사실을 전제로 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와 주인으로 고백하는 믿음이 있거나 그런 믿음 갖기를 소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예수님을 나의 주님(아도나이)이라고 고백할 때 우리 안에 아주 살짝 올라오는 생각이 있습니다. “이제 내 인생에 낙은 없구나”라는 생각입니다.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것도 못 하고 살겠구나”라는 생각입니다. 이제는 내 뜻이 아니라 주님 뜻대로만 살아야 한다는 생각, 그래서 조금은 실망스러워하는 그런 마음입니다. 나를 구원해 주신 것은 분명히 너무나 감사한 일인데, 이제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 되신다는 현실 앞에서 아주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떠한 면에서 우리가 주인과 종의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적용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인의 종의 개념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로마시대 노예의 개념과는 다릅니다. 아브라함 때의 종은 주인의 전적인 돌봄을 받는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이후에 약 십 년의 세월이 지나고 나서도 자녀 소식이 없자 집에서 길러진 종 엘리에셀을 후계자로 생각하기도 했었습니다.(창 15:2) 후계자는 아브라함의 모든 재산을 상속받고 공식적인 후계자로 권리와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제외하고 이 세상의 그 어떤 주인도 자신의 종을 위해, 자신의 백성을 위해 대신 죽음을 맞이한 존재가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 되신다는 것은 이러한 믿음을 갖고 있는 성도에게 어떤 제약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물과 피를 쏟으시며 죽으신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덧입는다는 것이며 동시에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이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참된 성도의 삶을 살아간다는 믿음의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영국이 낳은 믿음의 거인 찰스 T. 스터드는 복음을 받아들이고 회심한 후에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고, 나를 위해 죽으셨다면, 내가 그분을 위해 하는 어떤 희생도 결코 클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원자로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는 우리의 고백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고 한량없는 사랑에 대한 우리 모두의 온전하고 참된 믿음의 고백이 되는 복된 주일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