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도 고난을 겪나요?

이요한 목사
이요한 목사 469

   현실의 고통을 바라보는 동양의 사상이 인과응보입니다. 현재의 불행이나 고통은 과거에 행했던 잘못된 행동의 결과로 온다는 사상입니다. 예수님 당시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18명이 죽는 대형사고가 터졌을 때 유대인들은 사람들의 죄가 이런 불행을 만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누가복음 13:4에서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서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죄에 대한 보복이나 하나님의 심판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고난이 올 때에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하지만 모든 고난과 불행이 다 하나님의 벌이고 심판이라는 인과응보식 사고는 버려야 합니다. 

   “고난이 내게 유익이라고” 고백했던 시편 기자의 말씀도 있습니다. 반대로 형통함이나 부요함이 한 사람의 영혼에게 때로는 불행의 씨앗이 되기도 하는 경우가 성경에는 많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팔복을 보면 그 마지막 최정점의 복이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고 하셨습니다. 기독교는 분명히 고난이라는 고통의 환경 속에 숨겨져 있는 은총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나 조건 속에서 복과 화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한 사람이 인생에서 복과 화를 결정하는 것은 환경이 아니라 그 환경 속에 있는 마음의 반응과 해석에 달려 있습니다. 

   세상에서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면 인생의 성공과 형통을 누리게 되는 것은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에게 동일하게 작동하는 법칙입니다. 살면서 어려운 일이나 사고 역시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습니다. 코로나의 위협과 고통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비켜가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신앙인과 비 신앙인을 구분하는 차이점은 언제나 반응입니다. 환경과 고통에 집중하지 않고 여전히 하나님 안에서 감사와 자족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면, 그의 삶에는 믿음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고난을 당할 때 그리스도인은 절망하거나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믿음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기독교인은 고난을 통해 고난당한 자들의 자리로 들어가 함께 위로하고 연대해야 합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말씀처럼 어려운 이 시기에 나보다 더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통해 우리에게 회개의 영을 부어 주셔서 이 땅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이웃을 돌보며 다함께 힘을 모아 주님의 사랑으로 서로 위로하고 기도하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길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