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는 것
“1962년 6월, 나는 OMS 이사회의 중요한 이사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로스엔젤레스로 가던 중이었다. 히말라야 산맥 6천 피트 고지에 있는 란두르에서 마지막 날을 보내고 있는 동안 몸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목은 뜨끔 뜨끔 쑤시고 전신이 아팠으며 온 몸은 펄펄 끓었다. 이튿날 나는 버스를 탔고 버스에 타자 앞의 의자에 이마를 댔다. 너무 아파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온 몸에서 열이 났기 때문에 데라둔까지 이어지는 울퉁불퉁한 18마일의 곡선 도로를 여행하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 내가 두통과 구역질로 고통스러워하는 동안 열은 계속 올라갔다. 데라둔에서 기차로 갈아탔고 그 때 나는 오직 그리스도인 한 사람을 만나 기도부탁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기차가 어둠속에서 속도를 내기 시작했을 때 나는 갑자기 차가운 손이 젖은 수건으로 나의 이마를 닦아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순간 나의 두통과 열과 구역질과 목의 통증이 사라지며 병이 완전히 낫게 되었다. 그 즉시 나는 ‘누가 나를 위해 기도했을까?’ 하고 생각했다. 내가 홍콩과 도쿄에 도착하여 그곳 동역자들에게 메시지를 전할 때 그 간증을 하며 ‘내가 여기까지 건강하게 올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이라’ 고 말했다. 그리고는 그곳을 떠나 로스엔젤레스에 도착하여 회의에 참석하고 있는데 한통의 편지를 받았다. 그 편지에는 ‘당신이 란두르를 떠나던 그 날 밤 9:15분에 당신을 위해서 기도해야겠다는 강한 부담감이 생겨 당신을 위해서 기도했다’ 고 적혀 있었다. 내가 나은 것이 바로 그 날 그 시간이었다. 내가 느낀 차가운 손길이 그 기도자의 손길이었는지 아니면 그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보내진 천사의 손길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보기도가 수만 마일을 넘어 어느 더운 6월, 밤을 달리는 기차안의 한 환자를 치료했다는 사실이다. 우리 모두 이러한 기도의 교통을 더욱 자주 체험하도록 하자. 성령님의 조용하고도 세미한 음성을 들을 줄 아는 귀를 개발한 사람은 매우 적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마음을 닫고 있기 때문에 주님의 인도를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나 기도가 긴 팔을 갖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변함이 없다. 기도는 하늘에도 닿을 수 있으며 그 어느 때라도 이 세상 어느 곳에라도 갈 수 있다.”
오늘 설교 제목이 ‘헌신된 중보기도자’입니다. 우리가 누군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특권이요, 축복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헌신된 중보기도자로 거듭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