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연약한 자를 품는 공동체

구자훈 목사 (행정, 새가족)
구자훈 목사 (행정, 새가족) 162

   청년 시절 예수님을 영접하고 교회 내의 여러 사역에 참여했지만 유독 새가족 사역을 맡아 섬길 기회가 많았습니다. 함께 청년부를 다녔던 자매가 저에게 지어준 별명이 있었습니다. “100m 구자훈”입니다. 그 자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회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걸어오다 보면 100m 밖에서부터 손을 흔들며 맞아주고 있어서 100m 구자훈”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상당히 마음에 들어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오래 다니고, 목사 안수를 받고, 맡는 일이 많아지다 보니 더 이상 100m 밖에서 손을 흔드는 것이 쉽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성도님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눠야하는데, 해야 할 일들에 신경을 쓰다 보니 그냥 지나칠 때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한 솔직한 성도님께서 얼마 전에, “목사님께서 인사를 안받아줘서 삐졌었는데 스스로 잘 풀었어요.”라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왕년에 “100m 구자훈”이라는 별명이 무색해지는 순간입니다.

   교회 내에는 여러 대인관계가 있습니다.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다반사입니다. 특히 신앙을 가진지 얼마 되지 않은 초신자의 경우, 교회에 왔더니 이상한 사람만 많다고 볼멘소리를 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란 영적인 병원이고 병원에 환자가 많이 모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사도행전 6장을 보면 성령 충만했던 초대교회에서도 헬라파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져서 사도를 포함한 히브리 출신 교인들을 원망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처럼 우리는 서로에게 서운한 마음을 줄 수밖에 없는 영적인 환자입니다.

   교회 내에는 여러 사람이 있는 만큼 각자의 믿음의 단계도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으로 더 치유된 환자도 있고, 아직 더 많은 사랑을 필요로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알게 해주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있습니다. ‘나의 눈에 무엇이 보이는가’입니다. 혹시 나의 눈에 부족한 타인이 보이고 상처를 많이 받는다면 나를 치유해주실 하나님의 사랑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반면에 나의 눈에 상처받은 사람들이 보이신다면 그들을 마음에 품고 사랑하시길 바랍니다.

   교회 내의 대인관계의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를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롬 14:1) 우리가 사랑하는 한우리교회가 믿음이 연약한 많은 자들을 품는 교회가 되길 소원합니다. 연약한 자든 조금 덜 연약한 자든 모두가 하나되어 사랑이신 하나님을 쫓아가는 공동체가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