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 “감사하라, 사랑하라, 겸손하라”라고 하는 말은 아무리 가르쳐도 안되지만, “미워하라, 원망하라, 불평하라”라는 말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모두가 잘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 몸속에 아담과 하와의 죄악성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남태평양에서 미국으로 돌아오는 피난 수송선에서 있었던 “웨스트”라고 하는 여인이 직접 겪은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피난 수송선이 좁고 만원이라 좁은 선실 안에서 모두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선원이 와서는 작전 중이라 불은 켤 수 없지만 창문은 열어도 좋다고 해서 창가에 앉은 사람들이 캄캄한 중에 더듬어서 창문을 열었더니, 창문을 여는 소리에 그 선실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시원한 바닷바람이 들어오는 것 같고, 맑은 공기에 숨을 쉴 것 같은 마음에 그 밤에 모두가 편안한 잠을 잘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난 모든 사람들이 창문을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지난밤에 창문을 연 것은 안쪽 미닫이 문이었고, 바깥쪽 유리창은 열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실 바깥바람이 조금도 들어오지 않았는데도 창문 여는 소리만으로 사람들은 곤한 잠을 잘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행복과 불행도 이와 같이 바깥의 어떤 객관적인 환경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심령 가운데 마음먹기에 달려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거나, 사업이 잘되거나, 성공하면 행복해주실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행복과 만족이란 욕심을 채움으로서 행복하고 만족해지는 것이 아니라 욕심을 다스림으로서 행복하고 만족할 수 있습니다. 행복이란 것은 이렇게 자기 자신에게서 만들어져 가는 것이지 누가 대신해 주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합니다.
장미는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장미는 비록 자기 몸에 많은 가시를 갖고 있지만 자기 자시에 자기가 찔려서 아파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 스스로 만들어 놓은 욕심, 미움, 분노, 절망에 내가 찔리고 내가 아파하며 불행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행복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시련과 고통을 통해서 배워가며 만들어 가는 것이 참 행복을 맛보는 것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사업도 건강도 어려움이 있겠지만 고린도전서 10:13 말씀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감당할 시련만 주시며,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도 열어 주신다고 했습니다. “마틴 루터”는 하나님이 당신에게 10가지 시련을 줄 때 보다는 한 가지의 시련도 없을 때를 더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우리 한우리 교우들은 어떤 시련이 닥친다 해도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평강 가운데 기쁘고, 행복한 삶을 사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