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국의 어버이날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색종이로 카네이션꽃을 만들어서 부모님 가슴에 달아드리기도 하고, 성인들은 사랑의 마음을 담아 노부모님께 용돈이나 선물로 감사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어버이날을 만들어서 이토록 기념하는 이유는 부모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감사하자는 취지일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부모님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어버이날에 가장 받기 꺼리는 선물이 카네이션이라는 흥미로운 결과가 많은 의미를 던져 줍니다. 물론 실용주의에 젖어있는 현대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부모 공경의 좋은 취지가 형식적으로 되다보니, 상징과 기념의 무용론이 대세가 된 것이 아닐까요?
그럼 반대로 어버이날에 공경 받는 부모의 입장에서 생각을 한번 해 봅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 부모로 과거에 혹은 현재 자녀에게 어떤 사랑과 헌신의 삶을 보여주었는가? 분명히 각자가 표현하는 사랑과 헌신이 있겠지만, 그것이 결국 자녀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주일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부터 받은 은혜를 깨닫고 진정 누리는 자들이 누릴 수 있는 자유함에 대해 묵상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막연하게, 그리고 올바르게 깨닫지 못한 자들은 이 자유를 누릴 수도 없을뿐더러, 계속해서 형식적인 율법과 형식에 얽매이기 마련입니다. 어찌 보면 부모가 자녀를 가르치는 교육도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자녀를 교육하면서 맹목적인 사랑과 존경만을 강요하게 된다면, 결국 그 자녀들은 자라서 진정한 부모의 사랑을 깨달을 수도 없을뿐더러, 부담스러운 의무만 남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유대인들의 생활 지혜인 탈무드에 의하면, 부모가 자녀들에게 물려줘야 할 유산은 자전거나 피아노와 같이, 과거에 자신이 갖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진정으로 물려줘야 할 유산은 사랑, 근면, 겸허함, 그리고 검소함과 같이 부모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합니다. 계속해서 탈무드는 이렇게 말합니다. “다섯 살의 아들은 당신의 주인이며, 열 살의 자식은 노예이고, 열다섯 살의 자식은 동격이 된다. 그리고 그 뒤는 양육 방법에 따라 친구도 될 수도 있고 적도 될 수도 있다.”
분명히 어버이날을 기념해서 부모의 사랑에 감사하고 존경을 표하는 것은 너무 귀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 일이 부담스러운 행사로 끝난다면, 마치 은혜의 자유를 떠난 율법과 같습니다. 이 일이 바로잡기 위해, 부모는 먼저 자녀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위대한 유산을 남겨야 합니다. 교회에서, 가정에서 우리의 다음세대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과 덕을 끼쳐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유산을 물려받은 우리의 자녀들은 매일을 어버이날로 기념하며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