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명을 통해 깨달은 예수님의 사랑

민두식 전도사
민두식 전도사 384
(이번주는 에녹회를 담당하고 있는 민두식 전도사의 글을 게재합니다)

샬롬! 예수님의 이름으로 인사드립니다.
신년 감사 예배와 함께 결단의 시간을 가졌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 덧 올해의 마지막을 서서히 준비해야 하는 연말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혹시 신년에 결단했던 것들, 혹은 소원했던 것이 아직 미비된 것들이 있다면,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 속에서 모든 것이 성취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저에게는 살면서 총 두개의 좌우명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했을 때의 것인데, 그것은 “절대 지고는 못 산다. 무시당하고 살지말자” 였습니다. 제가 지금 생각해봐도 그 당시에는 심각하게 발달된 자존심과 경쟁 의식만을 통해서, 참으로 삭막한 인생을 살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난 이후, 저는 두 번째의 좌우명을 갖게 되었습니다. 즉, “내가 먼저 돕고자 다가서면, 그는 결국 내 사람이 될 것이다”였습니다. 풀어서 말하면, 상대를 나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줄 때, 가능하다는 나름 대로의 철학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제와 생각해 보면, 이 두번째 좌우명 또한 온전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두번째 좌우명에는 상대를 결국 내 사람으로 만들려고 했던 마음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한 에녹회 성도님이 편찮으셔서 임원단을 비롯한 에녹회 성도님들 아홉분들과 함께 심방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다소 적지 않은 심방대원들이었지만, 이들은 모두 어려움에 처한 지체를 향한 사랑으로 모인 아름다운 사절단이였습니다. 심방을 받은 성도님은 물론, 함께한 모든 분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리는 기쁨과 평강이 충만한 시간이었습니다. 그 기쁨은 마치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며, 흐뭇해 하실 것 같은 행복감이었습니다.
심방을 마친후, 저는 저의 두 번째 좌우명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되었습니다. 먼저 돕고자 다가선다는 것은 무언가를 바라기 위함이 아닌, 거저 받은 예수님의 사랑을 또 다른 지체에게 전해줘야 하는 구원 받은 성도들을 향한 예수님의 도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13:34) 예수님은 인류를 위한 아낌없는 사랑을 주셨고 항상 먼저 돕고자 다가오셨습니다. 하지만, 십자가의 처형 앞에서 그 사랑과 도움을 받은 모든 사람들이 항상 예수님의 편이 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인류의 구원이라는 위대한 사명 앞에서, 자신의 목숨 조차 아끼지 않는 은혜를 거저 베푸셨습니다. 건강한 공동체의 원동력은 거저 받은 예수님의 사랑을 또 다른 지체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부터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이 운동이 한우리 공동체 안에서 불일 듯 일어나, 교회 내에서 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우리들의 모습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발견하고 믿는 자들이 날마다 더해 질 수 있는 건강한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