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새벽예배를 통해 계속해서 욥의 생애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화려했던 그의 삶은 사단의 시험으로 졸지에 절망을 경험하게 됩니다. 자녀들이 다 죽고 아내와 주변의 모든 사람이 자신을 외면하고 조롱하는 가운데, 그는 여전히 하나님께서 회복시켜주실 것을 기대하고 소망합니다. 욥기 21장에 보면, 나아마 사람 소발이 욥을 향해 두 번째로 비난식의 충고를 한 이후 욥의 반론이 나옵니다. 욥은 친구들의 조롱 섞인 비난을 향해 반문하며, 악인이 경험하는 행복에 대해 언급합니다. “그들은 아이들을 양 떼 같이 내보내고 그들의 자녀들은 춤추는구나 그들은 소고와 수금으로 노래하고 피리불어 즐기며 그들의 날을 행복하게 지내다가 잠깐 사이에 스올에 내려가느니라”(욥 21:11-13) 그들이 경험하는 행복의 날들은 그저 이 땅에서 즐기며 누리는 것들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런 유한한 행복은 결국에 임할 스올 앞에서 허무해질 뿐입니다.
가나안 입성을 눈앞에 두고 함께 하지 못하는 위대한 지도자 모세는 출애굽 2세대들을 향해 인생이 누려야 할 진정한 행복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신 10:13). 인생이 누릴 수 있는 행복, 그리고 그 행복을 영원히 유지할 방법은 창조주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는 가운데 가능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그분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스라엘을 향해,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신 33:29)라고 선언합니다. 여호와의 구원을 이스라엘처럼 얻은 자도 없을뿐더러 그분의 도우심과 함께하심으로 형통함을 누리는 자들은 행복자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극심한 고난 가운데 절망을 지나는 욥조차도 하나님만 바라고 신뢰할 수 있는 그 믿음 때문에 행복할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악인이 누리는 인생의 행복은 그저 한순간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 안에 거했을지도 모릅니다.
예배 시간에 종종 부르게 되는 ‘행복’이라는 복음성가가 있습니다. 그 가사에 보면, “눈물 날 일 많지만 기도할 수 있는 것 억울한 일 많으나 주를 위해 참는 것 비록 짧은 작은 삶 주 뜻대로 사는 것 이것이 나의 삶의 행복이라오 이것이 행복 행복이라오 세상은 알 수 없는 하나님 선물”
이 행복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그리고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에 그대로 반영되어야 합니다.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우리의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을 섬기고 그분이 보내주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그분의 빛을 드러내는 삶을 통해 누릴 수 있게 됩니다. 때로는 힘들고 지치고 반복되는 삶 속에서도 성령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그분의 충만함을 사모할 때, 연약하지만 그분께서는 우리의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어려운 시기에 각자의 자리에서 진정한 행복을 누리며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