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에서 흔히 쓰는 단어 중에 '모태신앙'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이 이 단어를 쓰는 공통적 의미는 자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부모님이 크리스천이셨고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의 뱃속부터 교회에서 말씀을 듣고 복음을 듣는 환경에 노출되어있었다는 뜻일 것입니다.
성경에서 등장하는 대표적인 모태신앙인은 디모데입니다. 그에게는 영적으로 본을 보여준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있었고 (딤후 1:5) 그의 어린 시절에는 어머니와 할머니로부터 말씀을 배우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딤후 3:15) 그는 그러한 환경을 토대로 신앙을 가지게 되었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 훗날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는 인물이 됩니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자들이 모두 디모데와 같은 결과를 맞이하지는 않습니다. 대표적으로 엘리 대제사장의 두 아들은 훌륭한 신앙인인 아버지를 두었지만, 하나님께 대적하여 가문이 망하는 벌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일들을 보았을 때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경력, 배경은 우리의 절대적인 신앙의 기준 또는 척도가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모태신앙인이기에 신앙의 경력은 길어도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 있지만, 신앙의 경력이 짧아도 무섭게 영적으로 성장하여 성숙한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2019년도에 나온 한 설문조사를 보면 모태신앙인보다 모태신앙인이 아닌 경우의 사람들이 훨씬 더 신학적인 확신이 있다는 결과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환경에 있지 않았던 분들은 복음을 받아들이는 과정 가운데 진리에 대한 탐구, 씨름의 시간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모태신앙인들은 그런 신학적인 확신 측면에서는 상대적으로 약점을 보였지만 모태신앙인이 아닌 사람들에 비해 공동체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있고 감정적으로 더 깊게 연결되어 있다는 결과가 있습니다.
사실 엄연히 따지고 보면 ‘모태신앙인’이라는 말은 비성경적인 말입니다.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는 죄에 대한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필요하지만, 어머니의 배 속에 있을 때는 이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 경력, 배경을 앞세우거나 핑계로 삼는 것이 아니라 참 진리 되신 예수님과 그분의 복음을 끊임없이 상기하고 묵상할 때,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고 그 안에 깊이 연결되어 있을 때 우리의 신앙은 바로 설 수 있습니다. 한우리교회 모든 성도님에게 이러한 성숙과 성장의 은혜가 있으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