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와 카톡


정수옥 전도사 389
(이번주는 영유아부를 담당하고 있는 정수옥 전도사의 글을 게재합니다)

나는 ‘카톡’ 하는 소리와 함께 아침을 연다. 이른 아침이지만 벌써 영아부 가족들의 QT가 시작되고 있다는 소리이다. ‘카톡’하고 들리는 소리는 나를 미소 짓게 한다. 하나님께서도 참 기뻐하시겠다는 생각도 든다. 묵상을 길게 하든 짧게 하든, 깊게 하든 얕게 하든, 부분적으로 하든 종합적으로 하든, 적용이 잘 되든 그렇지 않든지 간에 그런 것은 일차적인 문제는 아닌 듯 싶다.
우리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매일 즐거움을 경험한다. 특히 아이들이 엄마 아빠를 즐겁게 하려고 애쓰는 모습은 앙증맞고 사랑스럽다. 그것을 알아달라고 보채는 것도 예쁘다. 그건 아이가 주는 기쁨이 완성품이어서가 아니다. 내 마음에 흡족해서도 아니다. 그냥 아이가 부모의 말에 순종하려고, 부모의 기쁨이 무엇인지 알고 노력하는 그 자체가 사랑스러운 거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QT를 그렇게 생각하실 것 같다.

나는 카톡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특히 여러 명이 참여하는 채팅방에서 유용하지 않는 말, 지극히 사적인 말로 성가시게 하는 것은 더 좋아하지 않는다. 그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카톡은 유용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공해이다.
그런데 QT방을 만들고부터 나는 카톡이 좋아지고 있다. 매일 아침 기다린다. ‘카톡’ 하는 소리가 나를 힐링해 준다. 양들이 영적인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소리로 들리기 때문이다.
우리의 QT는 매일 하나님께 드리는 꽃다발이다. 영아부 가족들이 다양한 꽃으로 꾸민 꽃다발이다. 어떤 엄마의 QT는 짧지만 장미꽃처럼 우월하고 향기롭다. 어떤 아빠의 QT는 극낙조처럼 강직하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의 QT는 옹기종기 공간을 잘 메우는 안개꽃 같다. 어떤 교사의 QT는 꽃다발을 하나로 묶어 주는 리본 같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의 꽃다발은 엉성하다.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어서 그렇고, 분주함에 급하게 하나님을 만나서 그렇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걸음마 연습하느라 뒤뚱거리는 아이를 바라보며 ,환한 미소로 두 팔을 크게 벌리고 있는 엄마 아빠의 모습이 아니실까. 아기가 걸음마 연습하다 하다가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는 그 모습이 눈물겹도록 기쁜 엄마 아빠의 모습이 아니실까. 글을 쓰는 지금도 ‘카톡’하는 소리가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