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Me?


신용호 부목사 476
(이번주는 신용호 부목사의 글을 게재합니다)

한인 최초의 미국 정치학 박사이자 교수였던 김춘근 장로가 자신의 신앙 여정을 기록한 “와이 미(Why me?)”라는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저자는 1967년 미국으로 유학 와서 USC에서 미국 정치학을 전공하고 페퍼다인 대학에서 재직 4년만에 최우수 교수상을 받으며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37세의 젊은 나이에 간경화와 간염, Hepatitis B로 수술도 할 수 없고 앞으로 1년 밖에 살지 못한다는 죽음을 선고 받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이럴 수가 있습니까? Why me? 하필이면 왜 접니까?”라며 실망과 절망으로 하나님께 끝없이 소리를 지르며 반항하는 시간들을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최근에 저와 친분이 깊은 목사님의 둘째 아들이 의사도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걸려 한 쪽 다리를 절개해야 하는 장애를 얻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건강하고 밝게 뛰어다니던 귀여운 둘째 아들이 어느 순간에 알 수 없는 병으로 인해 한 쪽 다리를 제대로 쓸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고 합니다. 목사님과 사모님은 아들에게 ‘너로 인하여 우리 가정이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하고 예배의 삶을 드리게 되었단다. 하나님께서 너를 통해 우리 가정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있을 것 같다’고 말하며 위로하였더니, 어린 아들의 입에서 나온 “Why me?”라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눈시울에 눈물이 어리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삶은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 평화로운 가정에 뜻하지 않은 질병과 사고가 생겼을 때, 직장과 사업체의 어려움으로 인해 고난과 괴로움을 겪을 때, 우리가 살면서 감당할 수 없는 많은 문제와 일들로 인해 우리는 수없이 하나님께 “Why me? 왜 하필이면 접니까?”라고 울부짖을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믿음의 자녀에게 주시는 고난과 괴로움에는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외아들 이삭을 바쳐야만 했을 때에도, 요셉이 종살이를 하고 감옥에서의 삶을 살았을 때, 모세가 왕궁을 떠나 광야에서 40년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었을 때, 엘리야가 로뎀나무 아래에서 있었을 때, 그리고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콜로세움 안에서 맹수들 앞에 서 있었을 때에도 “Why me? 왜 하필이면 접니까?”라는 울부짖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었을 때, 그 상황을 통해 하나님께 일하셨음을 우리는 성경과 역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더욱 단련시키시기 위해 믿음의 자녀들에게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우리는 앞으로의 삶에서도 수없이 많은 “Why me?”를 외칠 밖에 없는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 계속적으로 질문하십시오. “Why me? 왜 하필이면 접니까?” 그러나,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믿음의 허다한 증인들처럼 믿음의 길을 포기하지 마시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는 우리가 되길 소원합니다(히 12:1-2).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상황 가운데 일하시며, 하나님의 뜻 안에 우리가 온전히 거하는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